
- 1년 중의 단 하루 -
※ 사망소재 주의
-히후도
할로윈.
주변이 소란스럽다는 생각에 눈을 뜨자 보인, 평소보다 10배는 많아 보이는 거리의 사람들과 그들의 심상치 않은 옷차림에서 그 단어를 유추해 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0월 31일, 할로윈. 벌써 10월의 마지막인건가. 시간 한번 빠르네.
악마에 유령, 혹은 퀄리티 있는 좀비 분장까지. 할로윈에 걸맞게 차려입은 사람들과 달리, 나는 그저 평범한 회사원일 뿐이다.
야근하고 돌아온 그 모습 그대로, 정장 마이까지 빼먹지 않고 넥타이와 사원증을 휘날리는. 이 거리와 어느 것 하나 어울리지 않는 복장. 옷에서부터 느껴지는 이질감.
아니지, 야근에 지쳐 과로사한 회사원이라고 생각하면... 나름 괜찮을지도.
하, 하, 하.
내가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어져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쨌든 지금은 이 무리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에 최대한 사람이 적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정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10월의 마지막 날이었고, 그 마지막 날 또한 앞으로
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할로윈이 되면 되돌아온다는 ‘죽은 자’들의 시간도 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히후미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오늘이라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히후미는 밤이 되면 더 바빠지는 녀석이니까 분명 할로윈의 밤거리를 돌아다닐 여유는 없는 건지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정처 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손가락으로 층수를 헤아려본다. 눈에 들어온 익숙한 커튼의 색. 불은 꺼져있었다. 매번 출근길에 무의식적으로 올려다보면 항상 불이 켜져 있었는데, 오늘 저녁 반찬은 무엇일지 생각하며 힘든 발걸음을 이끌고 엘리베이터에 타곤 했었지.
언제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생활이 깨진 것도 벌써 몇 달 전.
그래, 그 몇 달 전 사고로,
“도, 돗포군?!”
갑자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묵직한 체중이 덮쳐왔다.
“진짜로 돗포군인거지?!”
“히, 히후미! 무거우니까 좀 떨어져..!”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건지 히후미는 순순히 내 말에 따라주었고, 그제야 그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두 눈 한가득 눈물을 머금은
호스트 모드의 히후미가 어느 때와 같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울던지 웃던지 하나만 해. 그리고 이제 집 앞이니까 자켓은 벗어!”
“으아앗!! 너무해 돗포링! 오렛치가 얼마나 돗포링을 찾아다녔는지 알아?”
억지로 자켓을 벗겨내자 평소의 시끄러운 히후미로 돌아왔다.
“오늘이라면 분명 돗포링이랑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이렇게 호스트모드로 하루 종일 찾아다녔는데! 설마, 서-얼마 돗포링
회사에 있던 건 아니지?!”
“뭐...”
- 띠리릭, 삐릭.
자연스레 도어락 번호를 누르는 히후미를 보며 말을 골랐다. 그도 그럴게,
“하아-?! 돗포 그 반응은 뭐야? 완! 전! 너무한데요!!”
“그럴 리가 없잖아?! 나, 나도 찾아다녔어. 길이 엇갈렸던 걸지도...”
미안, 찾아볼 시간이 없었어...
“정말?! 헉, 그럴 수도 있겠다. 돗포...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야.”
눈물을 글썽이며 껴안아오는 히후미를 지탱하며 쇼파에 걸터앉았다.
틱, 틱,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고, 히후미의 어깨 너머로 보인 시계는 어느덧 11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신기하다... 이렇게 만질 수 있다니.”
내 몸을 더 강하게 끌어안는 히후미.
“조금만, 조금만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내 품안에서 웅얼거리는 히후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그랬다면 같이 선생님도 만나러 가고, 야경도 보고, 그리고...”
뒷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이 이상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게 될 거 같아서.
“정말, 정말로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다시 헤어지기 싫은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히후미, 얼굴 보여줘.”
예상대로 눈물로 얼룩진 히후미의 얼굴이 나를 마주본다.
“할로윈이라는 거, 이렇게 또 이별의 아픔을 맛봐야하는 거라면 난 별론데.”
“이런 건 낭만적이라고 하는 거라구? 1년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는 걸. 다시 헤어지더라도 내년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돗포... 내년에도,”
- 만나줄 거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 뒷말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내 대답을,
단 한 번의 키스로 대신했다.
“푸흐.”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히후미에 입술을 떼고 고개를 갸웃하자, 히후미가 눈가를 소매로 훔치며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호박 모양의
바구니를 내민다.
“할로윈이니까. 돗포링, 트릭 오어 트릿!”
시끌벅적한 밖과 비교될 정도로 할로윈의 느낌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삭막한 방 안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호박 바구니. 작년이었다면 분명
할로윈 파티를 열자며 히후미가 이것저것 꾸며놓았겠지만, 올해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보다,
“어이 히후미... 내가 그런 걸 준비할 사람으로 보여?”
“에엣!! 뭐 예상은 했지만, 이러구. 그치만! 그치만 할로윈인데!!”
할로윈인데!!!!를 몇 번이고 외치며 방 안을 뛰어다니는 히후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자.”
참지 못하고 양 팔을 벌려 히후미의 앞을 막아섰다. 아무리 찾아도 사탕 같은 거 없으니까.
“에..?”
“…하아?”
에? 가 뭐야 에? 가! 트릭 오어 트릿의 의미는 아는 거야? 그냥 사탕이 먹고 싶은 거 아냐?!
내가 한심하다는 눈길로 바라보자 그제서야 아참참, 하고 웃어 보인다.
“그치만 오렛치는 돗포링한테 장난 같은 거 치고 싶지 않은데요~”
“매일 날 힘들게 한 게 누군데.”
“오렛치 그런 적 없구!!”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자 그럼 있잖아.., 라며 히후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새빨게진 얼굴의 히후미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키, 키스 한다..?! 아까보다 더.. 진하게...”
“누가 장난을 허락 맡고 해, 바보 히후미.”
“돗포링..! 사랑해!!”
“으앗, 자, 잠ㄲ..!”
히후미의 체중이 그대로 실려와 쇼파 위에 포개지듯 쓰러져버렸다.
뭐, 이걸로 된 건가.
틱, 틱, 두 사람의 끈적한 숨소리 사이로 시곗바늘의 초침소리가 울린다.
시간은 자비라는 게 없었고, 천장 가까이 걸린 시계가,
“돗포..다시 만나서 기뻐. 나, 역시 돗포가 없으면 안 돼.”
11시 59분을 지나,
“그러니까!”
“히후미.”
틱. 뎅-, 뎅-, 뎅-,
“가지마!!!”
“사랑해.”
시곗바늘이 12시 정각을 가리킨 것과 두 사람의 말이 교차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깨어났더라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안녕, 히후미.
돗포의 마지막 미소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고,
뎅--.
12번째 종소리와 함께 히후미의 오열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